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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로마 건축 특징 아그리파 공중목욕탕, 로마 고대 식수대 등

by 카링이 2022. 9. 6.

로마 건축 기술

로마의 건축 기술은 로마만이 가지고 있던 기술이라고 하기보다는 다른 민족들이 가지고 있던 선례들을 모아 잘 버무려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마는 서양건축사에서 절대 빠지지 않으며, 가장 많은 건축 유산들을 남겼습니다. 그리스 건축과도 특징 차이가 크기 때문에 같은 고전주의면서도 그리스 고전주의와 로마 고전주의를 별도로 구별을 하고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서기 10세기까지 즈음까지도 여전히 로마 건축술에 기대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서양에서는 지금까지도 로마 건축에서 디자인 모티브를 따오는 건축가들이 적지 않습니다.

 

로마 건축의 근원을 보자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첫 번째는 그리스 건축입니다. 그리스는 기원전 800년경부터 이탈리아에 식민지들을 만들고 있었는데요. 그리스의 본토에서는 그리스 문명이 처음 시작을 했었던 초기 모습이 있었는데, 로마 건축이 그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그대로 드러나있습니다. 특히 기원전 2세기에 있었던 헬레니즘 현상을 보면 기원전 146년경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합치고 헬레니즘 고전주의 문화를 직접 가져간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로마만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건축양식입니다. 여기에는 구조기술을 위주로 한 실용주의가 대부분인데요. 이때의 기술은 당시의 첨단 기술이었지만 첨단 기술만을 사용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술을 대량으로 운용을 했지만 그러면서도 전쟁 군사 기술적으로도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로마의 군사기술의 상당수는 건축과 농업기술을 활용한 것이었고 특히 건축 기술의 역할이 상당했다고 합니다.

 

로마 판테온 내부

로마 건축 특징

로마의 예술은 건축물에서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건축에서 기둥과 들보를 채용하였고, 에르투리아 성문에 쓰이는 아치형을 채용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조화를 이루며 지금까지도 놀라움을 자아내는 건축물들을 완성했는데요. 구조면에 있어서 아치형을 채용하고, 벽돌이나 돌을 가루로 만들어 사용하는 지금의 시멘트 건축 공업도 채용하면서 거대한 건축물을 짓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 건축은 외관의 미에 집중했다면 로마는 내부 공간에 더 충실합니다. 보다 실용적인 것을 추구했던 로마 사람들은 내부 거주를 하기에 얼마나 좋은가에 중점을 두고 내부를 조금 더 넓게 만들기 위하여 벽돌로 아치형을 자주 사용했습니다. 아치형은 상부의 중력을 원둘레에 균등하게 나누어주기 때문에 기둥을 줄이고 내부를 조금 더 넓힐 수 있습니다.

 

로마를 대표하는 건축물에는 콜로세움, 판테온, 수도(水道), 목욕탕, 로마 고대 식수대 등이 있겠습니다. 콜로세움은 로마의 황제인 베스파시아누스가 기원전 72년에 시작하여 그의 아들인 티투스제가 80년에 완성했습니다. 이 타원형의 대투 기장은 장경이 188m에 단경이 156m, 높이가 48.5m, 그리고 4층에 이르는 대규모의 건축물입니다.

 

판테온은 로마 최대의 원개 건축입니다. 현존하는 신존은 기원 120년경까지 하드리아누스제가 세운 것으로 당 지름은 43.2m, 천장의 높이도 43.2m, 벽의 두께가 6.20m 그리고 가운데는 지금 9m의 원형 천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내부에는 코란트식의 기둥을 세운 일곱 개의 감실이 있습니다. 북쪽 입구에는 코린트식 기둥을 8개 나란히 세워놓은 현관랑이 있습니다. 외관이 굉장히 간소하게 꾸며져 있어 내부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과 대비를 이룹니다.

 

로마 건축 특징을 꼽자면 실용성과 다양함일 것입니다. 신전과 극장, 바실리카, 목욕탕, 별장, 개선문, 기념탑, 수도 등 다양한 건축물들이 역대 황제들에 의하여 지어졌습니다. 

 

 

로마의 수도(水道)

로마는 사실 티베르 강을 끼고 있어 물이 부족한 나라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도시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물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급격히 늘어납니다. 이로 인하여 물을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첫 수도가 기원전 312년에 건설이 됩니다. 이름은 아피아 수도 입니다. 로마의 도로와 수도에는 건설을 총책임 한 사람의 이름이 붙습니다. 이 아피아 수도는 로마의 정치가인 아피우스가 건설을 맡아 아피아 수도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습니다.

 

이 아피아 수도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의 유래이기도 한데요. 이 아피아 수도는 놀랍게도 수원에서 16.4km의 거리를 연결해 로마까지 이어졌습니다. 이 수도는 지하에 만들어져있으며 그 길이가 지상의 185배라는 어마어마한 규모였다고 하는데요. 이렇게 복잡하게 만든 이유는 전쟁을 할 때에도 수도가 파괴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또한 수도를 지하에 지으면 수온이 올라간다거나 물이 증발을 하는 것도 막을 수 있습니다.

 

아피아 수도를 기점으로 3세기까지 로마에는 11개의 수도가 건설됩니다. 거리가 먼 수원지의 물을 끌어와 도시 주요 지역에서 흐르게끔 했으며 이로 인해 분수, 로마 고대 식수대까지 활성화가 됩니다. 로마 사람들은 풍부한 물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을 듯한데요. 이로 인해 로마인들은 공공장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이 편리함 덕분에 생활방식에도 커다란 변화가 있었습니다. 공중목욕탕, 공공화장실 같은 로마의 생활 문화는 물을 공급하는 수도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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