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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한국 '한양도성'에서 볼 수 있는 조선의 건축 기술

by 카링이 2022. 8. 29.

한양도성, 혜화문 내측 원경 / 사진 : 국립중앙박물관

 

성곽에 가보신 적 있으신가요? 우리 주변에서 생각보다 가깝게 볼 수 있지만 눈여겨본 적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서울에 사는 분들이라면 '한양도성'을 지나간 적도 아마 있을 거예요. 하지만 너무 익숙한 나머지 의식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한양도성에서 볼 수 있는 조선의 건축 기술들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합니다.

 

태조

한양도성은 조선의 첫 시작부터 함께 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양도성을 처음 지은 사람은 조선을 건국한 '태조'입니다. 당시에는 한양도성은 서울과 지방을 가르는 경계가 되면서 서울과 지방을 서로 묶어주는 공간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한양 밖 지방 사람들이 한양에 올라오자마자 만나는 곳이기도 하고, 한양 안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그들을 지켜주는 방벽이 되어주기도 했습니다.

 

태조 5년 처음 지었을 때 당시에는 토성과 석성으로 이루어져있었습니다. 평지에는 흙을 이용하여 짓고, 산지에는 돌을 이용해서 지었다고 합니다. 당시에는 성 내부에서 돌을 캐는 것이 금지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도성 밖에서 성을 지은 모든 돌들이 조달되었었다고 합니다. 옮기는 데에 많은 수고를 들였을 듯해요.

 

화강암과 편마암을 거의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했다고 하는데요. 큰 돌의 사이사이에 작은 돌을 끼워 넣어 수직으로 쌓아 올려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굉장히 거친 느낌이었습니다. 동북면의 함경도와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평안도 등의 인원 118,070명을 동원하여 지역별로 구역을 나누어 축조가 이루어졌습니다.

 

세종, 정조

태조가 처음에 완성을 했었던 한양도성은 시간이 지나고 세종과 정조 시기에 보수가 되고 다시 개축이 되기도 했습니다. 세종 때에는 평지에 있었던 토성을 돌을 이용해 석성으로 고쳐주었으며 원래 있었던 석성에 있던 돌들은 더 다듬었다고 합니다. 태조 때에는 거친 모양의 자연석 돌들을 사용해야 했지만 세종 때에는 벽돌들을 더 다듬을 수 있는 건축 기술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어요.

 

아랫부분은 2x3척 긴 네모꼴로 다듬은 벽돌들을 쌓고 윗부분에는 작은 돌로 쌓아 올렸습니다. 그래서 성벽의 중앙 부분이 밖으로 약간 튀어나와 있습니다. 전국에서 약 322,400여 명의 인원을 동원하여 평지에 있던 토성을 모두 돌을 이용한 석성으로 변경하고 성벽의 높이를 보강하였습니다.

 

그리고 한양도성이 자리를 잡게 된 후에는 재미있는 풍습들이 전해지기도 했다는데요. 정조 때, 학자 유득공은 당시에 한양에 과거 시험을 보러 왔던 선비들이 한양 도성에 급제를 할 수 있도록 빌었다고 합니다. 이 모습이 도성 안의 백성들에게 퍼지면서 도성을 한 바퀴 빙글빙글 돌면서 경치를 구경하는 '순성놀이'가 유행했다고 해요. 

 

숙종, 순조

이어서 숙종과 순조 시대에 이르러 한양도성은 이 전보다 더 정교한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숙종 시기에는 건축을 담당했던 감독관, 책임 기술자, 개축을 한 날짜 등을 명시한 기록도 있다고 하는데요. 이때 한양 도성은 전쟁을 겪으면서 무너졌던 성을 여러 차례 다시 재정비를 하면서 벽돌을 가로 세로 40~50cm의 크기로 규격화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 순조 시기에는 가로 세로 구격을 60cm인 정방형으로 변경하면서 한양도성은 더욱더 견고해집니다.

 

시기별 성벽모습 / 사진 : 서울특별시

 

근대화

하지만 근대화를 겪으면서 한양도성은 조선 시기 때의 모습을 많이 잃어버리게 됩니다. 근대화를 겪으면서 전차가 개통되었는데, 이 전차를 위하여 평지의 성벽들 대부분이 헐리게 됩니다. 그리고 성문은 한양의 입구를 하는 역할을 잃습니다.

성문 또한 광화문 문루와 혜화문 문루에 이어서 붕괴가 되었고 1938년에 성문과 성벽 일부를 헐게 된 후에는 조선시기 시절의 모습을 찾기 어려워졌다고 합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성벽 옆에 집을 짓는다거나 도로와 주택, 공공시설들이 지어지면서 성벽에서 많은 부분이 훼손되었습니다.

 

지금의 한양도성

조선의 역사가 담겨있지만 많이 훼손되어버린 한양도성. 지금은 옛날의 모습을 찾기 위한 많은 노력들 덕분에 70% 정도가 복원이 되었다고 합니다. 상당한 크기의 규모인 데다가 역사가 오래된 도성은 세계적으로도 흔치 않습니다. 2012년에 한양도성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가 됩니다.

 

많은 부분이 복원되기도 했지만 옛날 모습 그대로 남겨져있는 구간도 있다고 하는데요. 서울시에서 한양도성을 알리기 위해 운영하고 있는 프로그램들도 있으니 궁금한 분들은 참고해보는 것도 좋겠습니다. 

 

한양도성 지도
사진 : 서울특별시

 

한양도성 걷기 구간

한양도성은 조선의 수도였던 한양의 도심 경계를 표시하고 외부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축조된 성입니다. 태조 5년에 백악(북악산), 낙타(낙산), 목멱(남산), 인왕의 내사산의 능선을 따라서 지어진 이후 여러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습니다. 평균 높이는 약 5~8m이며 전체 길이는 약 18.6km로 현존하는 세계의 도성 중에서 가장 오랜 기간 동안 도성의 기능을 수행했다고 합니다.

 

한양도성은 4대 문과 4 소문이 있습니다. 4대 문은 많이들 알고 있는 숙정문과 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입니다. 4 소문은 서북에서 시계방향으로 창의문, 혜화문, 광희문, 소의문입니다. 이 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멸실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성의 바깥으로 물길을 잇기 위하여 흥인지문의 남쪽에는 오간수문, 이간수문이 있습니다.

 

한양도성은 순성길을 따라 하루에 모두 돌아볼 수 있기는 하지만, 내사산을 중심으로 백악, 낙산, 남산, 인왕산 구간, 그리고 흥인지문, 숭례문 구간 총 여섯 가지 구간으로 나누어서 돌아보는 것이 좋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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