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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브로드에이커 시티(Broadacre City : A New Community Plan)

by 카링이 2022. 8. 10.

브로드에이커 시티

라이트에게 1920년대는 굉장히 힘든 시기였습니다. 사적인 이슈로 인한 언론의 비난과 탈리에신에서의 화재사건, 그리고 어머님의 죽음이라는 시련이 계속해서 이어졌던 시기입니다. 그는 이 시기에도 끊임없이 작업을 이어갔으며 그의 관심이 건축에서 도시로 확대되면서 브로드에이커 시티에 대한 개념을 만들어가던 시기도 바로 이때입니다. 이 시기에 그는 '유소니아(Usonia), 즉 개혁된 미국 사회라는 의미에 대해 더 확장시키고 독서를 통해 경계, 정치 그리고 사회변화에 대해 다양한 이론을 습득했습니다. 라이트는 조그마한 학교와 농업, 공업 그리고 작은 정부가 이루는 균형 잡힌 경제 그리고 사회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가족과 이들이 생활하는 주택에 대해서 고민했고 새로운 공동체 사회로 이상적인 도시에 대한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이때 자본주의의 위기였던 대공황이 발생하면서 그는 이 구상을 조금 더 빠르게 완성하고자 합니다. 당시 사회체제에 대한 위기의식도 점차 더 고조되고 있었기에 사회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확고히 하게 됩니다.

 

이 생각을 최초로 드러낸 것은 1930년에 프린스턴 대학에서 진행했던 칸 강좌입니다. 이 후 1932년에는 그의 생각들을 정리해 The Disappearing City를 출간하기에 이릅니다. 이 책의 내용을 보면 많은 해악을 가진 대도시가 이후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도시가 출현해야만 한다고 말하며 새로운 도시는 어떤 형태를 가져야 하는지 그리고 새로운 문명은 어떤 기회들을 가져다줄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에서 앞으로 나올 브로드 에이커 시티를 볼 수 있습니다.

 

 

브로드 에이커 시티 : 새로운 공동체 계획(Broadacre City : A New Community Plan) 사진 출처 : franklloydwright.org

그는 1935년 4월에 한 건축 저널에 10년이 넘게 구상하고 있었던 이상도시 계획안을 '브로드 에이커 시티 : 새로운 공동체 계획(Broadacre City : A New Community Plan)'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하게 됩니다. 그리고 록셀러 센터(Rockefeller Center)에서 이 계획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나타낸 모델을 공개합니다. 3.6m x 3.6m의 거대한 크기로 공개한 이 구조물에서 그의 계획안을 볼 수 있었는데, 그가 말한 브로드 에이커 시티의 기본은 과감하게 분산하는 것입니다. 개인주의의 미국적 민주주의와 공업, 농업, 서비스업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공동체 내부의 자급자족 경제 체계입니다.

 

이 브로드에이커 시티가 완성되기 위해서는 기본 전제가 필요합니다. 먼저 세 가지의 과학기술적 전제와 인권사상에 근거한 인간의 세 가지 기본 권리입니다. 이 시티에서는 인간이 더 자유롭게 이동을 할 수 있는 자동차와 시민들 간의 상호 의사소통이 완벽하게 하는 전기 통신, 그리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표준화된 공장 생산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화폐를 중심으로 한 그 당시의 경제체제가 아니라 사회적 신용에 근거해 서로 교환을 하는 형태의 경제체제와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서로 활용하고 개선만 하는 토지에 대한 개념, 끝으로 공공복지를 위한 발명과 과학은 사유화가 아니라 공공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원칙이 이루어져야 그가 원하는 새로운 세계가 열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개념들은 그 당시, 산업화가 이루어지면서 그 발전이 마무리되어가고 있던 시기였던 때에 전혀 생각하지 못한 파격적인 개념이었습니다. 

 

그가 생각한 전제 조건 중 과학기술적 기본 전제들은 기계문명에 대해 너무 낙관적이고 기대감이 큰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이 있기도 했지만, 지금의 정보사회의 도래를 이미 70여년 전에 예견을 한 것을 보면 정말 놀랍다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회체제에 대한 가정 역시 놀랍습니다. 그의 제안을 보면 지금의 토지공개념과 신용카드 제도와 상당히 흡사합니다. 그의 의견 중에서 아직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복지를 위한 발명과 과학의 공공화인데요. 이 역시 앞으로 공공화가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게 됩니다. 

 

이 여섯 가지의 전제 조건이 이루어진 후, 각각의 가구는 직업과 인원 수에 따라서 적당한 토지를 할당을 받고, 스스로 이 토지에서 농사를 짓는 것이 브로드 에이커 시티에서 가장 바람직한 생활입니다. 토지를 경작하는 가구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이 도시의 가장 핵심적인 기본 단위라 하겠습니다.

 

또한 그가 구상한 브로드에이커 시티는 극단적으로 밀도가 낮은 도시입니다.

이 도시의 기본 사이즈를 가로 2마일, 세로 2마일로 4평방 마일로 제시하고 있는데요. 이곳에는 대략 1,400가구가 거주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봤습니다. 이는 헥타르당 약 1.35가구로 7명이 채 되지 않는 인구밀도입니다.

 

라이트는 도시 안에 있는 모든 형태와 기능에 대해서도 자세히 서술하고 있는데요. 가장 특이한 것은 교통체제입니다. 거주자들은 모두 자동차를 소유하고 있으며 라이트가 직접 디자인한 헬기 모양의 교통수단도 이용합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입체적인 간선도로체계입니다. 이 도로는 여러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각 층별로 철도와 모노레일, 화물 수송차 등이 바쁘게 움직입니다. 이 여러 층의 도로는 다소 이상적이기만 해 보이기도 하지만, 당시에 혁신적인 제안이었습니다.

 

브로드 에이커 시티에는 중심지가 없다는 것도 상당히 특이한데요. 이 도시에서 학교와 그 주변의 화랑, 공연장, 작은 공원 등이 커뮤니티의 중심 역할을 합니다. 가족들이 거주하는 주택은 직업, 인원수에 따라서 다섯 가지 형태로 지어집니다. 내연성이 강한 튼튼한 재료를 사용해야 하며, 유 소니 언 주택에 근거하여 단순한 형태로 지어집니다. 

 

이 도시의 에너지원으로는 석유, 가스, 전기 세 가지가 쓰이며 각 토지마다 설치가 되는 피트(Pit)라는 공동구에서 지급을 받고, 쓰레기와 상하수도 처리 역시 이 공동구로 해결합니다. 그 외에 작은 정부와 공공기관, 그리고 그린벨트의 기능을 하는 수목대에 대한 내용도 있습니다. 이 구성의 레이아웃은 행정조직 내에 있는 건축가가 계획하고 관장해야 합니다.

 

브로드 에이커 시티의 경제체제는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주장과도 매우 흡사합니다. 라이트는 조지의 의견을 받아들여 산업사회에서 발생하는 불평등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이 토지의 사유화라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또한 스위스의 경제학자인 게젤(Silbio Gesell)의 화폐는 다른 재화들과 마찬가지로 가치가 떨어져야 한다는 의견에도 큰 관심을 보입니다. 게젤은 불필요한 데다가 바람직하지도 않은 자본의 축적을 막고 소비를 더 장려하여 한 사람이 이자를 크게 가져가는 것도 줄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러나 조지는 토지 단일세, 게젤은 화폐제도의 개혁을 주장한 것에 비하여 라이트는 그들의 해결책에는 썩 동의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그 해결책들은 다소 단순하고 근본적인 해결은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근본적으로 해결을 하기 위해서는 자연 경제질서를 통해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교류가 이루어지는 시장과 소비를 즐길 수 있는 위락시설들을 통해 사고파는 것을 즐거운 게임처럼 여기게 해야 하는 것으로 해결안을 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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