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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초기 설계 작업들

by 카링이 2022. 8. 8.

초기 작업

라이트는 자신의 사무실을 내고, 자기 자신만의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의 디자인을 이끌어냈습니다.

윌리엄 H. 윈슬로우 하우스는 라이트가 처음으로 독자적으로 디자인한 건축물이었습니다. 몇 년 후의 작업물에 비하면 다소 보수적인 편이었지만, 넓은 지붕과 그만의 우아함이 더해져 주변의 주목을 끌었습니다. 미국만이 가지고 있는 건축물을 만들기로 결심하고 그는 이후 16년 동안 그만의 프레리 양식(Prairie Style)에 대한 기준을 세우게 됩니다. 이 집들은 낮은 지붕, 다락방과 지하실, 그리고 일반적으로 수평으로 긴 형태의 벽에는 칸막이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는 수평의 집들입니다. 지금 미국의 주택들을 떠올렸을 때 자연스럽게 나오는 바로 그 형태입니다.

 

마틴 하우스
마틴 하우스 (출처 : uncoveringnewyork.com)
유니티 사원
유니티 사원 (출처 : 위키피디아)

당시 라이트의 가장 중요한 주택 작품 중 하나는 다윈 D입니다. 

뉴욕 버팔로에 있는 마틴 주택(1903), 일리노아주의 리버사이드에 있는 에이버리 쿤리 주택(1907), 프레드릭 C. 시카고 로비 하우스(1908)이 있었고, 공공기관 건축물에는 버펄로의 라킨 회사 빌딩(1903)과 오크 파크의 유니티 사원(1905)이 있습니다.

 

1909년 후반에는 감정적으로 지쳐있었던 라이트는 몇 년 동안 사랑을 했던 마마 보스윅과 함께 가족을 떠나 유럽으로 떠납니다. 그의 직업과 가정에 피곤함과 불만이 쌓여있었던 상태였고, 여기에서 벗어나고 싶어했습니다. 유럽에서 있었던 이 공백기 동안에, 그의 작품 두 권과 그림, 사진 등이 출판됩니다. 이 출판물들은 그의 작품을 널리 알리고,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게 해 준 데다가 다른 건축가들에게도 정말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도쿄 임페리얼 호텔
도쿄 임페리얼 호텔

같은 해에 라이트와 마마 보스윅은 다시 미국으로 돌아왔고, 시카고의 사교계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 채로 스프링 그린의 근처에 그들의 집을 새롭게 짓기로 합니다. 이 곳에서 다시 건축 활동을 재개하기 시작했고, 이후 몇 년 간 두 곳의 건축 의뢰를 받습니다. 첫 번째는 1913년에 지은 시카고 미드웨어 가든스라는 엔터테인먼트 센터였고, 다음은 1916년에 지은 일본 도쿄의 임페리얼 호텔입니다.

 

도쿄의 임페리얼 호텔은 그에게 의뢰를 맡기러 온 오쿠라 기하치로가 추운 날씨에 난방이 되지 않는 방에서 음식은 한 술 뜨지도 못하고 추위에 떨다가 일어선느 모습을 보고 바닥 난방 시스템을 고안해낸 것으로 유명합니다. 당시에 이미 실용화가 되어있었던 전기 라디에이터의 파이프를 펴서 바닥에 깔게 된 것입니다. 이 시스템은 임페리얼 호텔 욕실에 적용되었습니다.

 

화재사건

1914년 8월에 라이트와 마마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하게 되었습니다. 화가 난 직원이 사무실에 화재를 내면서 마마와 그녀의 두 자녀, 그리고 네 명의 다른 사람들이 함께 사망하게 된 화재사건이 벌어진 것입니다. 라이트는 이 일로 인해 큰 충격을 받았고 이후 일에만 메달립니다. 그는 임페리얼 호텔과 LA에서 석유를 상속받은 알린 반스달의 홀리혹 하우스, 올리브 힐 등의 작업에만 메달리며 10년간 일만 했다고 합니다.

 

탈리에신 펠로우쉽 (Taliesin Fellowship)

화재사건 후 과도기를 겪은 그는 새로운 사람들을 육성하기 시작했습니다.

1922년부터 1934년까지 그는 건축학적으로는 창의적이었지만, 재정적으로는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LA에 새롭게 사무실을 지었지만, 1922년에 일본에서 돌아온 이 후 1923~1924년에 작업한 네 곳의 직물 공장을 제외하고는 번 돈이 많지 않았습니다. 그는 곧 이곳을 버리고 탈리에신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몇 가지의 프로젝트만 건설에 들어가게 되는데요. 많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이곳에서 보내는 10년간 라이트에게는 가장 훌륭한 디자인 혁신을 합니다. 

 

1928년에는 몬테네그로 대법원장의 딸인 올가 라조비치를 만나 결혼합니다. 처음 만난 것은 몇 년 앞서 시카고에서였다고 하는데요. 그녀는 수십 년 전에 시작했던 건축의 원인이라는 주제에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좋은 파트너가 되어주었습니다.

 

다만 건축에 대한 의뢰가 많지 않아, 라이트는 책을 쓰는 일과 강의를 하는데에 눈을 돌립니다. 1932년에는 두 개의 책을 출간합니다. 이는 자서전과 사라져 가는 도시입니다. 자서전은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았고 젊은 건축가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두 번째 책은 도시에서 시골로 옮겨간 지방 유토피아적 비전인 브로드 아커 시티에 대해 라이트가 세운 계획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는데요. 당시에는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향후 수십 년간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 라이트와 올가 라조비치는 탈리에신에 건축학교인 '탈리에신 펠로우쉽'을 설립합니다. 건축뿐만이 아니라 정원 가꾸기, 농업, 춤, 예술 등 다양한 토털 학습 환경을 제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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