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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그리고 실스비, 유니티 채플

by 카링이 2022. 8. 4.

고등학교 시절 (1885 ~ 1887)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매디슨 고등학교에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하네요. 1886년에는 위스콘신 대학의 매디슨에 입학 허가를 받았고 파이 델타 쎄타 사교클럽 활동을 합니다. 두 학기 동안 파트타임으로 수업을 들었고 토목학 교수 중 하나인 앨런 D. 코노버(Allan D. Conover)와 함께 일합니다. 대학교를 중간에 중퇴하기는 하지만, 1955년에 명예박사학위를 수여받습니다.

 

유니티 채플 Unity Chapel

시카고의 실스비 사무실 (1887 ~ 1888)

1887년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하여 일리노아주의 시카고로 갑니다. 1871년에는 시카고에서 벌어진 대 화재 사건과 급격한 인구의 증가로 인하여 수많은 재개발들이 진행 중이었습니다. 당시 시카고의 첫인상은 더럽고 복잡한 거리 그리고 실망스러운 상태의 건축물들이기는 했지만, 시카고에서 일자리를 구하기로 결심합니다. 결심하고 며칠 만에 여러 곳의 유명한 건축 사무소에서 면접을 보고 조셉 라이먼 실스비(Joseph Lyman Silsbee, 1848년 ~ 1913년)이 운영하는 건축 사무소에 제도공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1886년 그의 가족이 발주한 위스콘신주 스프링 그린에 있는 유니티 채플을 지을 때 실스비의 제도공 겸 공사 감리관으로 함께 일한 전적이 있었습니다.

 

 

힐사이드 홈스쿨 Hillside Home School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실스비의 회사에서 그 가족이 발주를 한 두 개의 프로젝트에 참여를 하는데요.

하나는 시카고에 있는 삼촌 젠킨 로이드 존스가 발주한 모든 영혼의 교회(All Souls Church)입니다. 다른 하나는 스프링 그린에 있는 두 이모가 의뢰한 홈 스쿨입니다.

 

1887년에는 실스비의 다른 제도공으로 일하던 세실 커윈(Cecil Corwin), 조지 W. 매허(George W. Maher), 조지 G. 엘름슬리(George G. Elmslie)와 함께 했는데요. 그중 세실 커윈과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자기 자신의 주택을 지을 때까지 커윈과 함께 삽니다.

 

당시 실스비로부터 주급 8달러를 받고 일을 했는데, 당시 그 임금이 업무 성과에 비해서 적다고 느낍니다. 그리고 그는 실스비의 사무실에서 퇴사하고 비어스(Beers), 더튼(Dutton), 클레이(Clay)의 건축 사무소에 입사해 디자이너로 일하게 됩니다. 그러나 곧 그는 혼자서 건축 디자인을 하기에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다시 실스비의 사무실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이때 실스비는 그의 임금을 인상합니다. 

 

다만 실스비는 주로 빅토리아 시대의 건축 양식, 복고주의를 선호하는 편이었지만 라이트는 그보다는 고풍스러운 그림과 같은 건축양식을 선호하는 편이었으며, 조금 더 진보적인 건축을 원했습니다.

 

 

다음 글에서 이어 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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