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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

데이코쿠 호텔 건축가, 괴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by 카링이 2022. 8. 4.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 ~ 1959

미국 근대의 건축가로 알려져 있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굉장히 독특한 건축 설계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친 건축가입니다. 그는 생전에는 물론 지금까지도 미국의 가장 유명한 건축가로 남아있는데요. 독특한 사생활은 수많은 토픽이 되었으며, 두 번의 이혼과 더불어 1914년에 있었던 탈리진 스튜디오에서의 직원 방화살인 사건이 유명합니다.

 

그는 미국의 위스콘신주에 있는 리치랜드센터에서 태어났으며 위스콘신 대학교를 중퇴하고, 시카고에서 1888년부터 1894년까지 아드라 설리번 사무소에서 일을 하게 됩니다. 1893년에는 시카고의 만국박람회에서 동사무소의 치프 디자이너로 참가하기도 합니다. 1894년에는 자신의 사무소를 내고 처음에는 개인 주택을 주로 작업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큰 건물을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힐사이드 홈 학교(1902)', '라킨 비누회사 빌딩(1904)', '시티 내셔널 뱅크(1909)' 등 다양한 작품들을 건축합니다.

 

많은 활약을 하고 루이스 설리번의 후계자로서 시카고 파를 이끌었는데요. 미국 건축의 양식을 타파하는데에 커다란 공헌을 하게 됩니다. 1911년에 위스콘신에 자택인 '탈리어센 이스트'와 1938년 애리조나에 '탈리어센웨스트'를 세우고 여기에서 생활하면서 제자와 함께 새로운 건축가를 양성하는데 집중했습니다.

 

 

데이코쿠 호텔

특히 일본과 유럽을 여행하면서 일본에서는 '데이코쿠 호텔'과 '자유학원'을 건축했습니다. 1930년대에는 '존슨회사 사무소', '카우프만 저택' 등을 지었고 제2차 세계대전 후에는 '구겐하임 미술관'을 설계했습니다. 1959년 애리조나주에 있는 피닉스에서 사망합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어린 시절

1867년 미국의 위스콘신주의 농촌인 리치랜드 센터에서 프랭크 링컨 라이트(Frank Lincoln Wright)라는 이름으로 태어납니다. 그의 아버지는 윌리엄 캐리 라이트(William Cary Wright)로 음악 선생님이자 목사, 연설가였고 변호사로 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윌리엄 라이트는 학교 교사였던 애나 로이드 존스(Anna Llioyd Jones)와 결혼하고, 그다음 해에는 리치랜드 카운티의 장학사로 취업하게 됩니다. 본래 메사추세츠주 출신으로 원래는 침례교의 목사일을 했지만 결혼 후 와이프를 따라 유니테리언교로 개종하게 됩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부모는 모두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성격이었으며 여러가지 독특한 관심사들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그 영향을 많이 받았고요. 그의 자서전에 따르면 그의 어머니가 장남이었던 그에게 너는 커서 아름다운 건물들을 많이 지을 것이라고 예상했으며 이를 주변에도 많이 알렸다고 합니다. 그의 어머니는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낸 다양한 영국 성당들을 이용해 아가방을 꾸몄었다고 합니다. 아직 아기였던 아들이 건축에 대한 꿈을 갖도록 한 것입니다. 1870년에 그의 가족들은 매사추세츠 주의 웨이머스로 이사를 갔고, 그의 아버지인 윌리엄 라이트는 목사일로 봉사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머니인 애나 로이드 라이트는 1876년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만국 박람회에서 프리드리히 프뢰벨이 개발한 교육용 블럭을 보고 크게 관심을 가지고 한 세트를 사 가지고 돌아옵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오랜 시간 동안 이 블록 세트를 가지고 놀았다고 해요. 이 세트에는 다양한 기하학적인 형태의 블록들이 있었고, 그 블록을 가지고 조합하고 조립을 하면서 정말 많은 물체들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의 자서전에는 이 놀이가 후에 그의 디자인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기술하기도 했습니다. "나는 수년간 그 조그마한 유치원 책상 앞에서 직육면체와 구, 삼각형을 가지고 놀았습니다. 이 단풍나무 블록들은 아직도 내 손안에 있는 듯합니다." 그의 건축물의 가장 큰 특징은 기하학적이면서도 뚜렷한 라인이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라이트 가족들은 웨이머스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습니다. 아버지가 취업을 하는데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로이드 존스 가문이 있는 위스콘신주의 스프링 그린으로 돌아가게 되는데요. 그로인해 위스콘신주의 매디슨에 정착하면서 윌리엄 라이트는 음악 레슨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유니테리언 단체의 비서로도 일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다정다감하고 가정적인 아버지는 아니었지만, 그의 자식들과 음악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누었다고 하네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14살이 될 무렵, 그들의 부모는 서로 사이가 나빠집니다. 특히 그의 어머니인 애나 로이드 라이트는 남편인 윌리엄 라이트의 경제력에 불만이 생겼고, 가족을 떠나라고 합니다. 그에 윌리엄은 서로 애정이 없다는 이유로 이혼 소송을 제기했고, 1885년에 이혼 절차가 완료됩니다. 그리고 그 후 윌리엄은 위스콘신 주를 아예 떠나버렸고 그 후로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드는 그의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바로 이 시기에 외가인 로이드 존스 가문을 존경한다는 의미로 미들 네임을 링컨에서 로이드로 변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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